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물지식가이드 저널 ‘WEEKLY PEOPLE’

통증만을 연구해 온 집념의 의료인

대한민국 통증의학의

역사를 말하다

 

문동언 문동언마취통증의학과 대표원장 가톨릭의대 마취통증의학과 명예교수







통증은 우리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입니다하지만 만성화가 된다면 통증이 우리 몸을 해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지난 30여 년간 통증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대학에서 진료와 연구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오랜 시간 서울성모병원 통증센터에서 진료하며 이 환자가 조금만 더 빨리 찾아오셔서 치료를 받으셨다면 이렇게 힘든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늘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아프실 때, 너무 참지 마시고 빨리 진단에 맞는 최상의 치료를 받아 아프지 않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웃으며 살았으면 합니다.”








환자에게 보답하는 길


EBS <명의>에 통증 명의로 소개(226, 278, 524)되면서 대중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문동언 원장은 통증의학에 있어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던 인물이다국내 통증의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해 올 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사의 삶이 있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완치되어 웃는 것을 볼 때 행복했습니다. 그것이 매일 저를 책상 앞에 머물게 하고, 늘 후학들에게 공부 좀 해라라는 잔소리를 하게 하는 이유였습니다. 오늘도 저를 통증 명의로 만들어준 환자분들에게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환자들의 통증 치료를 위해 연구하고 더 매진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환자들의 통증 치료를 위하여


문동언 원장은 척추 통증 환자의 신경성형술을 5,000례 이상 달성할 정도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문동언 원장은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완전히 손상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비수술적 치료만으로 증상이 크게 호전되며, 완치가 가능할 만큼 예후도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환자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병원을 오픈하면서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몇 번 치료하면 나아요? 몇 번 주사 맞으면 나아요?”인데, 의료 기술이 상품화되고 패키지화된 일부 왜곡된 현실에 길들여져 있는 의료 소비자들의 생각의 틀을 깨기 힘들 때가 많다고. 이는 비단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사-환자 트라이앵글의 삼박자가 얽혀있는 의료계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 다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노라고 약속할 뿐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팔로우업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와서 이야기 해주십시오라는 짧은 답변으로 대신하는 문 원장. ‘통증만을 집념 있게 연구해 온 그는 환자 생각에 여념이 없다. 환자와의 라포(Rapport)가 중요하다는 문 원장은 치료율을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와 의사가 서로 믿음을 갖는 것이라며 전문의인 의료진을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고 당부했다.










그가 걸어온 길, 앞으로 나아갈 길


<문동언마취통증의학과>는 외국 의료진들도 많이 참관하러 올 정도로 통증의학에 롤모델이 되고 있는 병원이다. 중국, 일본, 타이완,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 외국의 통증의학 전문의들이 초음파 유도하 신경차단 치료의 처치하는 법을 배우고 척추관 협착증 환자 추간공 성형술 시술법을 배워갔다.

문 원장의 시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듯, 그가 학회 연자로 초청되는 날도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통증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문동언 원장이 수준 높은 한국의 의료기술을 공유하며 자긍심을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문동언 원장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통증의학의 산증인이자 역사이다. 통증의학과를 개척하고 통증 완화를 위한 연구와 시술에 앞장서 온 그가 있기에 많은 통증 환자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아닐까진정한 명의는 의사 스스로가 아닌 환자가 만들어주는 것이라던 그의 말이 묵직한 감동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